INTRO: 사랑 혹은 집착
TV 광고카피중에 “연애는 짧고 생활은 길다” 라는 것이 있었다. 서로 좋아서 만나서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면, 더 행복할 것 같은데 얼마지나지 않아서 환상은 깨지게 된다. 그래서 결혼하는 커플의 50%가 이혼을 한다고 한다. 왜 연애할때는 그렇게 좋다가 결혼하면 싫어질까? 연애할때에는 사랑이라기 보다는 자기가 좋아서 상대방을 만나고 선물을 사주는 것이다. 대부분. 자기 중심적인 감정이고 이것은 심해지면 집착이 된다. 그런데 사랑은 자기 희생을 전제하는 것이다. 너무 다르지 않은가? 결혼 서약은 “이 사람을 평생 사랑하겠다는 서약이다.” 좋을때나 싫을때나 이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돌보아 줄 것을 맹세하는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내어주는 것, 자신을 부인하고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애쓰는 것이 사랑이다. 이렇듯 사랑은 자기 희생을 전제하고, 사랑의 관계는 언약으로 맺어지는 것이다. (깨어지기 쉬우니까)
사랑은 희생이라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들었지만,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메시지가 가슴으로 다가왔다. 제가 의지적으로 사랑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관계가 깨어질듯하면 그때 의지를 가지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고 사랑하려고 하였지 평상시에는 감정에 이끌리는 대로, 혹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의지적으로 배우자를 가족을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렇게 할때, 우리의 마음에도 하나님의 기쁨이 있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사랑할 수 있는가? 상대방이 나의 희생과 사랑을 몰라줘도, 아무리 부인이 남편이 몰라줘도, 그렇게 상대방이 변하지 않아도, 아무런 조건없이 그렇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어지지 않으면 도저히 희생하는 사랑을 한평생 할 수 없다. 행복한 가정을 원하시는가? 그러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
온힘을 다해, 온 생명을 다해, 온 인생을 걸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4-5절)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4--5절은 모세오경의 가장중요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어떻게 알지요? 하나님을 위해서 내 물질과 내 인생과 내 생명을 희생할 때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자주 다른 것을 향하여 달려감으로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리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 더 자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는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6-9절이 그 핵심이다.
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찌니라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과 네 생활속에 두어라 (6-9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남편에게 아내에게 나누고, 일주일에 한번만이 아니라 매일 밥먹을 때에도, 운전할 때에도, 쉴 때에도, 시간만 나면 말씀을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어디에 붙여놓으라고 합니까? 냉장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여놓고, 책상에도, 싱크대에도 화장대 거울에도 말씀을 붙여놓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연애편지를 읽고 또 읽고 상대방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지 묵상하고 생각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나요? 일단 해보시라. 최선을 다해서 말씀을 가까이하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 말씀을 따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두번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오직 그분만 섬기는 것이다 (10-15절)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12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14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지 말라
15 너희 중에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
10절-11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와 은혜가 어떠한지 말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건축하지 아니한 성읍과 집들을 얻게 되었다. 자기들이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농장을 얻게 되었고, 자기들이 수고하지 아니한 추수의 열매로 배불리 먹게 되었다.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은 어떠한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을 얻게 되었다. 무엇이든 기도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응답해주신다. 이러한 은혜에 대한 감사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과거에 베푸신 은혜에 감사해서, 그 사랑을 기억함으로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아야 한다. 상대방이 싫어하는데 억지로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폭력이다. (탕수육이 아무리 맛있어도 상대방이 싫어하면 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안해주는 것이 배려이다) 하나님의 어떤 분이신가? 질투의 하나님이시다. 세상의 다른 신들과 같이 취급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욕이다.
그러면서 특별히 우리에게 경고를 주는 것은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신들이 누구인가? 14절에 잇는 것처럼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이다. 우리의 불신 친구들이 불신 친척과 이웃들이 섬기는 우상들, 돈, 명예, 세상의 쾌락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그리하면,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복들을 다시 가져가신다고 하셨다. (가나안땅을 주셨는데 다시 그땅에서 내쫓으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물질을, 건강을, 가족을 데려가실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어떤 사람이 이렇게 질문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질투하시면 참 사랑이 아니지 않느냐? 라고 질문을 한다. 하나님의 질투는 미워하는 질투가 아니요 사랑하는 마음에 안타까움에 마음이 불타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질투라는 표현보다는 열심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예수님은 그 열심으로 인해서 성전뜰을 정화하셨으면, 그 열심으로 인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 아닌가? (그리스도의 열정으로 많은 사람들의 헌신의 삶, 순교의 삶, 울부짖는 기도를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벌하신다면 그것은 회개하고 돌이키기 위한 것, 사랑에 근거한 것임을 잊지 말자.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은 선하시다.
주님께로 나오는 것을 최고의 우선순위로 삼으라. “회사일 때문에교회 못나와요” “바빠서 교회 섬기지 못해요” “기도할 시간이 말씀 읽을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남아서 교회나오고 시간이 남아서 말씀읽는 것 아니다. 우리가 그런 핑계로 세상에 한발 주님께 한발 걸치고 있다면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르겠다. “천국에 자리가 비면 연락할께 당분간 지옥에 가 있거라”
우리의 예배와 주님을 섬기는 것이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라면, 미래에 베푸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대하며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세번째로, 미래에 부어질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오늘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라 (16-19절)
16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하신 것과 규례를 삼가 지키며
18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사 네 대적을 몰수히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하신 아름다운 땅을 들어가서 얻으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라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우리가 그 말씀에 대해서 평가하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오른빰을 때리거든 왼뺨도 돌려대라. 원수를 사랑하라. 이런 말씀들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과연 내게 유익을 주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실천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성가대에 참여해서 섬기라는 얘기를 듣고는 그것이 과여 내 유익을 가져오는 지의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먼저 헤아려야 한다.
16절에 있는 마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의 의도를 의심하였던 곳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출애굽하여 광야에 왔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심. 오직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간다. 그런데 물이 없는 지역에 도달했다. 그러면 당연히 불평이 나오게 된다. 길을 잘못 인도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주님의 가신 길을 따르고, 교회를 섬김에 있어서 어떤 경우에는 물이 없는 곳을 지나게 된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빠지게 된다. 직장을 잃기도 하고 큰 병에 걸리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하나님이 과연 이길로 인도하신 것인가? 하나님이 과연 우리가정가운데 계신 것인가? 과연 하나님만 믿고 가면 되겠는가? 다른 방도를 찾아봐야 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이 들게 된다.
남유다가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가고 남은 사람들이 애굽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이방신들을 섬기었다.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외친다. 제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그때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한지 아십니까? “우리가 예전에 하늘의 별과 달을 섬길때 부유하고 잘살았는데 하나님을 섬기게 되니까 (요시야의 개혁)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은 버리고 이방신들을 제대로 섬길 것이다”
우리가 이런 실수를 범하면 안된다. 눈에 보이는 결과, 혹은 물질의 부유함과 생활의 편안함이 하나님께서 나의 신앙생활을 인정하신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제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우리는 더더욱 집중해야 한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걸어왔다면 그 길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향한다고 해서, 좁은 문으로 인도한다고 해서, 십자가의 골고다로 인도한다고 해서 멈추지 말라. 다른 길을 기웃거리지 말라. 그 길이 하나님이 이끄신다고 하면 어떤 길이라 할지라도 나아가라. 그것이 생명의 길이요 복된 길이다.
그래서 17절에 말한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삼가 지키며.” “삼가”의 의미는 행여나 말씀을 놓칠까 행여나 말씀을 어길까 하는 마음으로, 영어로는 “very carefully 매우 조심히” 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보여주실 것이다.
네번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증거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0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뇨 하거든
21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22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과 바로와 그 온 집에 베푸시고
23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24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
25 우리가 그 명하신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찌니라
다른 사람들은 일요일이 되면 산과 들판으로 놀러가는데 우리는 교회에 와서 예배드린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물질을 자기를 위해 마음껏 사용하는데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드린다. 다른 사람들은 은혜의 복음을 이용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죄를 짓고 사는데,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내 인생을 희생하며 살아간다. 그때 우리의 자녀들이 물어볼 것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돈과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야 하나요?” (제가 그렇게 질문했다. 마음속으로) 그때 우리는 설명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십자가로 속량하시고, 비록 이땅에 살지만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다고.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가운데서 우리를 선택하셨음을 그 은혜와 사랑을 다시 느끼게 될 것이다.
25절에서 말합니다. 우리의 의로움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고 따르는 것임을. 우리가 하나님 뜻을 잘 따르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아무런 장벽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과 허물이 없이 소통하는 상태를 신학적으로 “의롭다” 것의 의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흘러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머리와 마음, 온 삶에 가득차게 하라. 생활이 되고 문화가 되게 하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여러분의 시간과 인생, 물질을 사용하라. 어느 도시에 가서 살지, 어느 집을 살지, 누구와 결혼할지, 어떤 직장을 가질지,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하라. 너무 숨막히는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그렇게 하셨다. 여러분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셨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온 생애를 던져 하나님을 사랑하라.
CLOSING
결혼 서약, 사랑의 서약이 없이 참된 사랑은 시작되지 않는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서약, 헌신의 서약이 없이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사랑의 관계가 시작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하나님이 단지 좋아서 말씀을 읽고 따랐다면, 내게 유익이 되므로 그리했다면, 이제는 사랑의 서약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밤이 그밤 되길 원한다.
그런 서약을 잊어버리고 사셨다면 다시 한번 갱신하길 원한다.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